[스페인][쿠엥카] 협곡에 숨어있는 나만의 비밀 피서지- Buendia

이곳은 한동안 남들에게 알려주기 

꺼려했던 피서지이다.

여길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나만의 피서지를 잃을 것 같은

두려움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블로그에 쓸 수 있다.

예전에는 편하게 운전해서 갈 수 있었는데

이젠 협곡 초입부터 길을 막아서

한참을 걸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엄밀히 말하면 이곳 관계자만 차량 이동이 가능하고

나 같은 불청객(?)은 초입에서 걸어가야 된다.

자연에 진심인 사람이 아니고서야

고생고생 하면서 거기까지 몇이나 갈까 싶다.

ㅎㅎㅎ

 

거대한 협곡 사이로 강이 유려하게 흐르고

한참을 걷다 보면 작은 예배당이 나오는

정말 예쁘고 조용하고 시원한 곳이다.

 

마드리드에서 동쪽으로 한 시간 반 정도.

부엔디아(Buendia)라는 마을 근처에 있다.

협곡 초입은 부엔디아 댐 부근이다.

 

주차 공간이 많지 않기 때문에

주말이나 한여름에는 오전 일찍 가야 한다.

 

관계자가 아니면 차 갖고 오지 말라는

엄중한 경고를 지나쳐 댐 아래

과디엘라 강이 흐르는 곳으로 걸어 내려간다.

목적지까지는 약 6킬로미터 정도를 걸어야 한다.

초입의 오르막내리막 길만 제외하면

평탄한 길만 걷는 거여서 트레킹 난이도는 높지 않다.

다만, 땡볕을 피할 만한 그늘이 별로 없어

한여름 대낮에 걸으면 땀이 뻘뻘 난다.

 

가파른 내리막길의 끝에 도달하면

평탄한 흙길이 이어진다.

돗자리와 파라솔, 먹을 음식 등을 이고지고

본격적인 트레킹을 시작한다.

우리가 도착한 시간은 오전 11시경.

초여름인데도 햇빛이 뜨거워

이마에서 땀이 뚝뚝 떨어졌다.

 

 

하지만 끝도 없이 이어지는

너무나 예쁘고 평온한 풍경에 감탄하며

자박자박 발걸음과 함께

노래를 흥얼거리며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덥거나 다리가 아플 땐 잠시 멈춰 서서

시원한 강물을 바라보며 얼음물을

한 모금 크게 들이켰다.

 

한 시간 반 정도 걸으면 목적지가 두 눈에 들어온다.

과디엘라 강이 크게 방향을 바꾸는 지점에

몇 개의 건물과 작은 선착장 같은 시설이

자리 잡고 있다.

 

말 그래도 파란 하늘과 푸른 강.

 

처음 이곳을 발견했을 때 느꼈던 벅찬 감동을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이곳의 이름은

Ermita Nuestra Señora de los Desamparados.

버려진 자들을 위한 마리아 성모의 예배당이란 뜻이다.

누가 이런 외지에 예배당을 만들었는지는 모르지만

왠지 정말로 버려진 자들이 이곳을 찾는다면

평안을 얻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우리가 도착했을 땐

많아야 20명 정도?가 있었던 것 같다.

이 중 대부분은 이곳의 관계자이거나

관계자와 아는 사람들이어서

차량으로 편하게 온 사람들 같았다.

이곳에 마련된 피크닉 공간에서

준비해 간 볶음밥과 맥주를 먹었다.

취사는 불가능하고 매점 같은 것도 없기 때문에

여기서 먹을 음식과 음료는 다 싸와야 한다.

 

 

선착장 겸 산책로가 길게 뻗어 있는데

여기서 자유롭게 수영을 즐길 수 있다.

강물에 들어가자마자 바로 2미터가 넘기 때문에

수영에 자신 있는 사람만 들어가는 게 안전하다.

안전요원 같은 사람도 없기 때문에

스스로의 목숨은 각자 챙겨야 한다;;

하지만 어린아이들도 부모의 지도 하에

튜브 타고 다들 재밌게 놀고 있다.

 

 

내가 정말 사랑하는 풍경이다.

항상 이곳에 올 때마다

내가 죽기 전까진 유명해지지 않길 기도한다.

 

 

거대한 바위 밑에 예배당이 자리 잡고 있다.

건물이 바치 바위에 깔려있는 듯한 모양새이다.

원래 항상 이곳 문은 잠겨 있었는데,

우리가 갔을 때 마침 예배당 관리인이 피서 중이었다.

나와 여친이 사진기를 들고 기웃거리니

우리가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예배당 내부를 

보여주겠다고 나섰다.

오지랖 넓은 감사한 아저씨.

 

교회(iglesia)가 아닌 예배당(ermita)여서

내부는 비교적 단촐하다.

문득 한국의 기도원이 떠올랐다.

영적으로 힘든 일이 있을 때

아무도 없는 시간에 이곳에 와서

기도를 하고 성경을 읽는 다면

뭔가 하나님과 오붓한 시간을

가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스박스에 소소하게 챙겨 온

음료수와 과자를 먹으며

한동안 강가에서 신선놀음을 하다가

해가 질 무렵에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나만의 비밀 피서지 초입 위치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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