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한창 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8월 초.
새로 이사를 온 뒤 아직 에어컨을 설치하지 않아
더위에 허덕이고 있던 한가한 주말이었다.
이미 7월에 휴가는 갔다 왔고...
딱히 할 일이 없어 심심하던 차에
한번 가보고 싶었던 시골 마을에
산책을 가기로 결정했다.
마을 이름은 페드라사(Pedraza).
세고비아 지역에 속한 곳이지만
마드리드에서 자동차로 1시간 20분 정도면
다다를 수 있다.
이곳에 가고 싶었던 이유는 두 가지.
산속에 있어 집보다는 시원할 것 같았고
여기가 중세 시대 느낌이 잘 보존되어 있는 마을로
알만한 사람은 아는 유명한 곳이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이곳은 워낙 작은 시골 마을이라
대중교통편이 매우 부실하다.
마드리드에서 직접 가는 교통편은 없고
세고비아 버스 정류장에서 30분이나 1시간
간격으로 출발하는 버스를 타고
하염없이 가야 한다.
그래서 이 마을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직접 운전해서 온다.
관광객이 물밀듯이 밀려들지 않아
한적한 중세 마을 분위기를 유지할 수 있는 건
이런 교통의 불편함 덕분이 아닐까 싶다.
페드라사 위치 링크:
Pedraza · 40172 세고비아 스페인
40172 세고비아 스페인
www.google.com
이 마을이 좀 유명하긴 했어도
사실 처음에 갔을 땐 별 기대를 하지 않았다.
스페인의 웬만한 곳은 다 가 봤기 때문에
분위기가 어떨지 어느 정도 짐작이 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곳은 마을 입구를 들어서는 순간
적잖이 신선한 충격을 받게 되었다.
중세 마을을 구현하거나 재건한 게 아니라
진짜 그 당시 마을 그대로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마을을 신나게 돌아다니며 사진을 열심히 찍었지만
그날 느낀 분위기에 10%도 담지 못한 것 같다.
500년 전으로 돌아간 듯한 기분 좋은 착각 덕분에
즐거운 주말을 보낼 수 있었다.
참고로,
이 마을엔 무료 주차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마을 입구에 들어서면 안내판 표지에 따라
무료 주차장으로 어렵지 않게 이동할 수 있다.
이번에 갔을 때 느낀 게
워낙 옛날 마을이다 보니
어떤 거리는 폭이 너무 좁아
대형 SUV나 미니밴 같은 차종은
자칫하면 옆을 다 긁을 것 같았다.
이곳에 여행 오기 전에 그 점은
감안을 해야 할 것 같다.
페드라사 무료 주차장 링크:
Google 지도
Google 지도에서 지역정보를 검색하고 지도를 살펴보거나 운전경로 정보를 검색합니다.
www.google.com
페드라사는 과거로 돌아가면
켈트이베로 족도 살았었고
로마제국이 지은 마을도 있었지만
그런 흔적은 이제 거의 다 사라져 버렸다.
이곳의 현재의 모습으로 갖춰지게 된 건 11~12세기 즈음.
알폰소 6세 왕이 국토회복운동을 통해
이슬람 세력의 지배를 받던 이 쪽 지역을 재탈환하게 된다.
그러다가 15세기에 접어들어
현재의 페드라사 지역이 페르난데스 벨라스코(Fernández Velasco)
가문의 소유로 넘어가게 되면서 이곳이
눈부신 성장을 실현하게 된다.
이곳이 경제적 부를 축적할 수 있었던 이유는
여기에서 양질의 양털로 만든 실과 직물이 생산되었고
벨기에나 이탈리아 쪽으로 수출까지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곳에 남아있는 대부분의 저택들은
한창 경제적인 성장을 거두던 16~17세기에 지어졌다고 한다.
그러다 시간이 흘러 페드라사 지역의 축산업이 위기를 겪게 되며
양털 직물 산업도 쇠퇴하게 되었고,
이러한 이유로 이 곳 주민들도 조금씩 다른 지역으로 이사하게 되며
페드라사는 사람들의 기억에서 거의 잊혀 갔다.
그러나 1970년 대에 스페인의 관광 산업이 발달하기 시작하는 가운데
대도시에 거주하는 중산층의 별장 소유 붐이 일기 시작하며
페드라사가 이들의 주말 별장 지역으로 다시 주목을 받게 되었다.
생각해 보니,
페드라사는 초급 여행자들에겐
추천할 만한 곳은 아닌 것 같다.
흔히 말하는 '랜드마크'라고 할 게 없어서
무언가 대단한 걸 기대하고 온다면
실망하고 돌아갈 것 같다.
이 마을을 온전히 즐기기 위해선
약간의 상상력이 필요할 것 같다.
500년 전 페드라사 주민들이
이곳에서 어떠한 삶을 영위했을지
골목골목을 천천히 거니며
마음대로 상상해 보는 여유를 가져야 한다.
그렇다고 볼거리가 아주 없는 건 아니다.
소박하게나마 '마요르 광장'이 있다.
2층 높이의 건물이 얼기설기 광장을 둘러싸고 있으며
한편엔 교회의 종탑이 우뚝 서있다.
종탑의 반대편에는 테라스를 지탱하고 있는 기둥들이 있는데
기둥 양식이나 두께 등이 일관성 없이 세워져 있는 것으로 보아
오랜 기간에 걸쳐 낡고 망가진 기둥을
새것으로 교체해 나간 듯했다.
나는 그렇게 세월의 흐름이 잔뜩 묻어있는 것들에
오히려 더 큰 매력을 느끼는 듯하다.
이곳에서 가장 재미났던 관광지는
과거에 쓰던 감옥이었다.
사실 감옥이라는 건물 자체가
안에 대단한 시설이나 물건이 있는 게 아니어서
사진에 무언가를 담기엔 좀 빈약할 수 있다.
그런데 그 감옥에 대한 설명이 꽤나 흥미로웠다.
특히, 인권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던 그 시절
감옥 관리자가 죄수들에게 행했던
비인간적인 행위를 듣고 있으면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예를 들어, 몇 년이고 죄수를
어둠 밖에 없는 지하 감옥에 가둬두고
죄수가 죽으면 이를 모아뒀다가
이들을 비료로 만들어 썼다는 얘기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그 외에도 페드라사 마을에는
산토 도밍고 센터(Centro de Santo Domingo)가 있었다.
과거 교회로 사용되던 곳을 문화 공간으로 만든 듯했다.
산책을 하다 우연히 이곳을 지나갔는데
마침 예술 작품을 무료로 전시하고 있었다.
Jordi Diaz Alamà와 Grzegorz Gwiazda라는 작가의
단테의 지옥(L'infern de Dante)이라는 전시회였다.
단테의 신곡: 지옥 편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인 것 같았다.
외딴 시골 마을의 무료 전시회인데도
예술 작품의 퀄리티에 감탄했다.
붉은색을 메인으로 한 강렬함과 기괴함, 절망 등이
풍부하고 절묘하게 묘사되어 있었다.
그리고 의도한 것인지는 몰라도
교회로 사용하던 곳을 러프하게 허물어
전시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어
작품의 주제와도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산토 도밍고 센터는 구글맵 상에
정확히 표시되어 있지 않는 것 같다.
이 마을에 방문을 한다면 한 번쯤 이곳에 들러
재미난 작품이 전시가 되고 있는지 확인해 보는 걸 권한다.
산토 도밍고 센터 주소 링크:
Google 지도
Google 지도에서 지역정보를 검색하고 지도를 살펴보거나 운전경로 정보를 검색합니다.
www.google.com
그 밖에도
페드라사에는 소소하게 볼 것이 많다.
마을을 대표하는 페드라사 성(Castillo de Pedraza)이 대표적이다.
난 시간이 맞지 않아 들어가 보지 못했지만
성 내부가 잘 보존되어 있고
Zuloaga라고 하는 스페인 유명 화가의 작품도 볼 수 있다고 하니
시간이 된다면 둘러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페드라사 성 주소 링크:
Castillo de Pedraza · Plaza del Castillo, s/n, 40172 Pedraza, Segovia, 스페인
★★★★☆ · 성곽
www.google.com
아, 마지막으로 페드라사는
화덕에 구운 양고기(Cordero Lechal Asado)로 유명하다.
난 이 날 다른 마을에 식당을 예약해 아쉽게도 가보지 못했지만
양고기 마니아라면 이곳에서 와인과 함께
고기를 즐겨보시는 것을 권한다.
스페인 여행 커뮤니티에서 추천하는
페드라사 양고기 맛집은 다음과 같다.
Restaurante El Soportal de Pedraza:
Restaurante El Soportal Pedraza · Pl. Mayor, 7, 40172 Pedraza, Segovia, 스페인
★★★★☆ · 양고기 바베큐 전문점
www.google.com
La Olma de Pedraza:
La Olma de Pedraza - Restaurante en Pedraza de la Sierra · Plaza Álamo, 1, 40172 Pedraza, Segovia, 스페인
★★★★☆ · 음식점
www.google.com
El Corral de Joaquina:
El Corral de Joaquina · C. Iscar, 3, 40172 Pedraza, Segovia, 스페인
★★★★☆ · 음식점
www.googl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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